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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투쟁 거점 원주.. ''군수·면장 끌어내 만세 요구''
방송일 20260301 / 조회수 61 / 취재기자 황구선
◀ 앵 커 ▶
오늘은 일제 총칼 앞에서도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3.1절이죠,
원주는 전국적으로 봐도 독립 만세운동과
의병들의 항일 투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던 역사적인 공간인데요.
원주지역 독립운동을 황구선 기자가
다시 짚어봤습니다.
◀ 리포트 ▶
고종의 사망 이후 조선 팔도에 거세게
일었던 독립 만세운동.
원주지역 민심을 달래기 위해
부론에 파견된 당시 원주군수를
10대였던 노림학교 졸업생 7명이 길목에서
막아세웠습니다.
이들은 일제에 협력하던 군수에게 독립만세를
외치라고 요구했지만, 거부한 군수는
일본 헌병대에 소식을 알렸고,
주도했던 한범우 열사는 일제에 붙잡혀
18살 나이로 옥고를 치른 뒤 숨졌습니다.
1919년 3월 27일, 노림학교 만세운동으로
알려진 이 운동은 교사들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졸업생들이 거행했던 원주지역 최초
독립 만세운동으로 기록됐습니다.
◀ INT ▶ 정영효/원주시 부론면
"선조분들의 순국 정신을 이어받아서
그분들의 헌신을 우리가 다시 이어서
대대손손에게 물려줘야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st-up ▶ "부론 운동이 있던 그날부터
횡성에서 만세운동을 하다 일제 총탄에
숨진 열사들을 기리기 위해 이곳 소초면에서도
독립만세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횡성 4.1만세운동 현장에서 일본헌병 발포로
5명이 숨을 거두자, 4월 5일 장례식을 치르고
모인 박영하 지사 등 주민 4백명은
당시 소초면장을 끌어내 만세를 외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심의성 지사는
"면장을 끌어내 앞에 세우고 천지가
진동하도록 만세를 삼창했다"고
회고록에 적었습니다.
부론 운동이 원주 최초였다면
소초는 원주지역 최대 만세 운동이었고,
모두 일제에 부역하던 권력층을 심판했습니다.
◀ INT ▶ 윤병진/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이 자리인 소초면사무소에 4백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들어 만세운동을 전개한
것이죠. 면장을 강제로 끌어내서 구타도
하고 만세운동을 시켰던"
이런 만세운동이 있기 전 원주는
일제의 국모 시해사건과
외교권을 박탈했던 을사늑약,
군대 해산령 등에 반발한 항일 의사들이
3차례 모두 봉기했던 전국에서 손꼽히는
의병들의 거점이었습니다.
원주에서 1895년 을미의병과
1905년 을사의병, 1907년 정미의병을
이끌었던 이춘영, 원용팔, 민긍호 대장은
일본군의 허를 찌르며 게릴라전을 펼치다
순국했습니다.
구한말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하게
독립 만세운동과 항일투쟁이 펼쳐졌던
원주는 중앙으로부터 연계나 지원을
받은 것이 아닌, 주민과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MBC 뉴스 황구선입니다//
(영상취재 박영현)◀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