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 - 다큐 나는... 산다

2018년 6월 26일 방송

"요리로 통일을 꿈꾸다"

 

새터민들의 명과 암은 분명하다.

정부가 지원해 탈북민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뒷받침하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의 적응은 새터민 각자의 몫!

목돈에 대한 유혹 때문에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이들도 있다.

지역 새터민들 중에도 성공적인 정착생활을 하고 있는 사례가

많은데 그중 한명이 바로 원주 단계동에서 막국수 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순복씨. 정부에서 지원해준 정착금과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막국수집을 차려 지금은 단양에 2호점까지 오픈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는 올림픽 평창 식품관에서 북한 음식을

홍보하고 판매했을 만큼 열정이 넘치는 여성이라는데....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남한에서 제 2의 인생을 꿈꾸는 이순복씨.

그녀의 남한에서의 삶과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본다.

 

목숨을 건 탈북과 강제압송, 탈북 도중 아들과의 생이별까지....

 

북에 있을 때 그녀의 직업은 요리사였다.

훈련소 병원 조리장으로 경제적으로는 남들보다 부족하지 않았다. 지인 권유로 탈북 했고, 중국에 체류하면서 북은 '더 이상 못 갈 데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1999년과 2001. 탈북을 시도했다.

하지만 두 번의 시도 모두 발각돼 북에 압송됐다.

포기하지 않았고 2001년 다시 시도해 중국에 정착했다.

두부 장사로 생계를 꾸리다 중국인 남편을 만나 아들을 낳았다.

 

살림은 넉넉하지 않아도 주변 탈북민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가끔씩 브로커가 한국에서 살기를 권유했지만 남한은 북한보다 더 못 사는 곳이라 여겨 거절했다.

 

그러다 그녀가 도움을 준 탈북 커플이 북에 발각되는 일이 벌어졌다. 자연스레 그녀의 이름이 거론된 위기에 처했고

이번에 압송되면 다시는 탈북 기회가 없을 것이 뻔 한 상황.

어린 아들의 눈물어린 호소에도 남한행을 결심하고 짐을 쌌다.

남한에 있으면 연락이라도 할 수 있지만 압송되면 그마저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남한의 땅을 밟다.

죽을 만큼 악착같이 일해서 마련한 막국수 집.

 

2007년 가까스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남한은 구두닦이로 연명하거나 깡통에 밥 빌어먹는 곳인 줄로만 알았는데 크고 세련된 공항 화장실을 보고 감탄했다.

 

국정원에서 남한 생활에 대한 교육을 받고 원주에 생활터전을

잡았다. 어렵사리 식당에 취직해 남한 생활에 차츰 적응하자

5년 안에 식당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5년 간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며 살았다.

번 돈과 정착금을 합쳐 8천만 원을 모아 2012년 단계동에 막국수 집을 차렸다. 고생 끝에 차린 가게인만큼 특색 있는 막국수를 선보이고 싶었고 북한식 메뉴를 개발해 인기를 끌었다.

 

새내기 탈북민들의 다정한 이웃으로.....

 

그녀의 막국수 집엔 공짜 손님도 많이 온다.

무실동 경로당에서 매월 어르신들이 찾아와 음식을 먹는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된 탈북주민들도 오갈 데 없을 땐

그녀의 식당을 찾는다.

처음 식당을 시작하곤 매월 탈북민들의 생일잔치도 무료로

열어줬다. 지금도 새터민들에게 행사가 있을 때면 그녀의 가게에

모여 행사를 치른다.

 

 

성공으로 가는 길목에서 제 2의 인생을 꿈꾼다.

 

그녀의 소문난 요리솜씨 덕분에 평창 동계올림픽에선

강원도 대표로 북한 음식을 홍보할 수 있었다.

 

단계동에 식당을 오픈한지 5년만엔 충북 단양에 2호점도 오픈했다.

조만간 원주에 3호점도 낼 계획이란다.

멈추지 않는 불도저처럼 성공을 향해 열심히 살아가는 이순복씨.

앞으로 빌딩을 세워 새내기 탈북민을 도우며 살아가고 싶다는데...